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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헌법재판소 세 번째 심판 받게 된 사형제

법률 제정 이래 수십 년간 ‘존폐 논쟁’이 이어져 왔던 사형제(死刑制)가 다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지난 1996년, 2010년 이후 세 번째로 헌법에 합치되는지를 따집니다.

헌재는 내일(14일) 오후 2시 이른바 ‘사형제 사건’(2019헌바59 형법 제41조 제1호 등 위헌소헌)에 대한 공개 변론을 엽니다. 2019년 존속 살해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모 씨가 검찰의 사형 구형과 관련,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를 통해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는 것입니다.

헌재는 이날 청구인의 대리인, 이해관계인 및 참고인의 진술을 들을 예정입니다. 청구인은 윤씨와 윤씨 측 법률 대리인, 이해관계인은 법무부 장관과 법률 대리인 정부법무공단입니다. 참고인은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재 직권),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윤씨 측),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무부 장관 측) 등입니다.

헌재가 심판하게 될 형법상 '사형제' 관련 법 조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 형법 제41조 제1호: 형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사형
- 형법 제250조 제2항: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위의 형법 조항들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심판하는 것인데, 심판의 근거가 될 헌법 조문은 대표적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 헌법 제37조 제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의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 1997년 이후 사형 미집행…‘실질적 폐지국’

법무부가 발간한 ‘2022 법무연감’에 따르면 1997년 12월 30일 23명을 끝으로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사형제도가 존재하나 오랜 기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나라는 2007년 국제 인권 단체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됐습니다. 정부는 2020년 제75차 유엔 총회 제46차 정기 회의에서 ‘사형 집행 모라토리엄(일시 유예)’ 결의안에 찬성하기도 했습니다.

법무부는 2009년 국회 제출 자료에서 정부 수립 이후 1997년까지 총 사형 집행 인원이 923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와 달리 1945년 미 군정기부터 집계해 총 2,328명으로 추산한 민간 연구 자료도 있습니다. 지난 5월 발간된 국제앰네스티의 ‘전 세계 연례 사형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전 세계에서 집행된 사형 건수는 총 579건이었습니다. 현재 사형 유지국은 미국·일본·중국·베트남 등 84개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형수는 59명(군인 4명 포함)입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유영철, 총기 난사 임모 병장, 어부 살인 사건 오종근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최고령 사형수는 1938년생 오종근, 최장기 사형수는 1993년 확정 판결을 받은 종교시설 방화 사건의 원언식입니다.

연쇄살인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강호순(왼쪽)과 유영철(오른쪽). (사진 출처=연합뉴스)헌재는 헌법재판관 9인 중 다수 의견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합니다. 사형제의 경우 1996년 7:2, 2010년 5:4로 합헌 결정이 났습니다. 다수 의견은 사형제가 범죄 예방을 위한 ‘필요악’이자 흉악범에 대한 합당한 단죄 수단이라고 봤습니다.

12년 만에 다시 헌재 결정을 받게 된 사형제, 이번에는 어떤 결론이 나올까요? 일각에서는 사형제 폐지 견해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재판관들이 다수라는 점에 근거해 위헌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물론 재판관 개인의 소신과 헌법적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 “생명권 박탈 권한, 누가 줬나” 對 “죽음에 대한 공포, 범죄 막아”

헌재와 법제처 등에 따르면 사형제 위헌 여부의 세부적 쟁점은 크게 3가지입니다. ① 범죄 예방 효과의 유무 ② 생명권 침해 여부 ③ 응보(應報·범죄에 대한 응당한 보복) 합치 문제가 그것입니다.

첫 번째 쟁점과 관련해 청구인 측은 “범죄자의 생명과 비교되는 공익인 ‘사회의 질서 유지’는 매우 막연한 것”이라며 “사형제에 의해 얼마나 어떻게 보호될 수 있는지 논증된 바 없다”고 주장합니다. 허완중 전남대 교수도 “국가가 사형 제도의 효용성에 대해 증명할 수 없다면 위헌”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법무부는 “사형의 범죄 억지력이 통계에 의해 밝혀지지 않는다고 부정(否定)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합니다. ‘인간의 생존 본능’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심’을 고려하면 범죄 예방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범죄라는 게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우발적인 경우만 있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계획범죄 같은) 그런 경우들에 있어서는 ‘이런 식으로 하면 잡혀서 사형을 받을 수 있다’고 다시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쟁점에서 청구인 측은 “국가가 인간의 생명 가치를 법적으로 평가하고 박탈하는 건 생명권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주장합니다. ‘살인을 법으로 금지한 국가가 법의 논리로 살인을 자행하는 건 모순이다’ ‘사형 집행 후에는 오심(誤審) 사실이 밝혀져도 되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허완중 교수는 “헌법상 국가는 모든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받는다. 국민이 언제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할 권한을 국가에 줬나”라며 “국민의 생명권은 처분하거나 포기할 수 없고 남에게 줄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형제 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 연석회의가 2019년 11월 29일 밤 ‘세계 사형 반대의 날’을 맞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담장에 사형제도 폐지의 염원을 담은 조명을 비추고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법무부는 “특정한 인간에 대한 생명권의 제한이, 일반 국민의 생명 보호나 이에 준하는 매우 중대한 공익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에는, 생명에 대한 법적 평가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며 사형제가 생명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세 번째 쟁점의 경우에도 양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섭니다. 청구인 측은 “사형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적인 가치로 승인하는 근대적인 의미에서 응보라고 할 수 없다”며 “범죄인을 영구히 격리함으로써 사회를 보호하는 기능은 종신형 또는 감형 없는 무기징역에 의해서도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와 반대로 법무부는 “사형이 범죄의 해악성에 비례해 부과되는 한, 객관적 정의 감정에 근거한 응보의 발로로서 오히려 정의에 합치된다”며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 피해자 가족과 국민의 정의 관념 등을 고려하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이 사형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 사형 명시한 헌법, 사형제 인정했나?

내일 열릴 이번 ‘사형제 변론’에서는 이상의 원론적·윤리적 쟁점 외에도 위헌 심판의 향방을 가를 핵심적 쟁점이 하나 있습니다. 헌법 조문에 사형이 유일하게 명시된 제110조 4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군인·군무원의 범죄나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유독음식물공급·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이 정한 경우에 한하여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헌법 110조 4항

이를 놓고 사형제 합헌 입장을 지닌 쪽에서는 ‘헌법에서도 사형 제도의 존재와 운용을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위헌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전시(戰時)나 이에 준하는 상황에서의 범죄에 한해 사형을 언급하고 있을 뿐, 범죄 일반에 대한 헌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며 ‘사형을 신중하게 여기는 조문의 취지를 살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일 열릴 이번 ‘사형제 변론’에서는 원론적·윤리적 쟁점 외에도 위헌 심판의 향방을 가를 핵심적 쟁점이 하나 있다. 헌법 조문에 사형이 유일하게 명시된 제110조 4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일상’에서도 사형 선고가 되고 있고, ‘국가 긴급 사태’에서도 사형이 선고되지만 단심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해석이죠. (이렇게) 우리나라 헌법에 규정돼 있는 만큼 ‘법률’을 통해 사형을 폐지할 수는 없는 거고, 차라리 (완전 폐지하려면 국민과 국회 동의를 얻어) ‘개헌’을 해야 하는 거죠.” -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1987년 헌법 개정 과정에서 단서 조항으로 들어온 건데요. 이전에는 군사재판 시 사형을 단심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 입법자들이 반성의 차원에서 만든 거죠. 사형을 허용하기 위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사형 남발을) 막아보려는 의도인 겁니다. 그런데 ‘(사형이 헌법에) 명문화된 것 아니냐’, 이렇게 형식논리로 접근하면 안 되죠. 배경을 보고 연역적 해석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경찰경호과 교수

내일 변론 개시로 진행될 이번 ‘사형제 심판’은 어디까지나 ‘헌법에 맞느냐 안 맞느냐’를 따지는 과정입니다. 사회적·윤리적 기준만으로 찬반을 가르거나, 당장의 존폐를 결정하는 자리는 아니지요. 그래서 ‘사형제 폐기’를 소신으로 갖고 있는 재판관도 작금의 헌법에는 합치된다고 판단할 수 있고, 사형제의 순기능을 일부 인정하는 재판관도 헌법에는 맞지 않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