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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극장에서 본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상영되는 광고를 두고 또 다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을 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문제가 많다는 겁니다.

사실 이런 논란 때문에 이미 2000년대 후반부터 국회에서 법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논란이 많은 '극장 광고', 왜 계속 방치해 두는지 류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며칠 전 낮 시간, 서울의 한 복합상영관입니다.

‘전체 관람가’ 등급의 애니메이션 영화 상영을 앞두고 광고가 한창입니다.

<녹취> "00000가 뭐야~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한 대형 대부업체가 인수한 저축은행 광고입니다.

관련법상 대부업체는 아니지만 ‘30일 무이자’ ‘누구나 OK’ 등의 대출 문구를 내세운 ‘대부계열 저축은행’으로, 이번 국정감사에서 ‘대부업체가 사실상 간판만 바꿔 광고하는 것인 만큼 동일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요즘 영화 한편 보려면 이런 대출 광고를 두세 편은 봐야 한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더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성형 광곱니다.

가장 많은 논란이 됐던 상영작입니다.

<녹취> “야, 저 언니 정말 예쁘다. ... 으악!”

<녹취> “오늘 소개팅 맞으시죠? ... 으악!”

특정 외모를 비하하고 성형을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듯한 내용에 관객들은 큰 불쾌감을 토로했습니다.

<인터뷰> 김혜인(서울 아현동) : “애들하고도 같이 볼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난 번에 보니까, 굉장히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하는 광고도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앉아서 봐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TV와 달리 극장은 (그 광고를 안 볼) 선택권이 없잖아요.”

대부업체의 경우 유해하다는 사회적 우려가 높아 지상파 3사에선 자율 합의에 따라 전면 금지했고, 케이블TV나 인쇄 매체 등에서도 규제와 조건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성형외과 같은 의료광고는 의료법상 TV와 라디오에선 아예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극장은 철저히 사각지대입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제29조 2항에서 영화 전후에 상영되는 ‘광고’는 상영등급을 꼭 받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녹취> "감기 조심하세요~"

<인터뷰> 문철수(한신대 미디어광고영상학부 교수) : “'극장 광고'가 과거에는 대한뉴스 뒤에 나오는 주로 지역광고였습니다. 동네 상점 광고라든지 이런 게 주를 이뤘는데, 최근 3대 메이저 영화관들이 들어서면서 극장 광고의 효용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까 관련 법규 같은 게 굉장히 허술한 형편입니다. 정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관련 법규에 대한 보완 필요성은 해당 부처에서도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여성가족부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보낸 협조 공문입니다.

<녹취> 여성가족부 : “전체 관람가 영화 상영 중에 외모지상주의. 무분별한 금융소비를 조장하는 의료기관, 대부업 광고가 상영되고 있어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심의 강화를 요청합니다.”

이에 대한 영등위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녹취> 영상물등급위원회 : “성형외과 및 대부업 광고는 ‘의료법’이나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규제 내용이 없어 보완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관련법 정비에 귀부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극장에서 상영하는 의료광고나 대부 광고를 제재할 근거 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광고의 한 형태인 ‘영화 예고편’도 관리가 허술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등급은 전체, 12세 이상,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 이렇게 4단계로 나뉘지만, 이 영화를 홍보하는 예고편은 두 등급으로만 분류됩니다. '청소년관람 불가' 아니면 '전체 관람가’ 본편과 예고편의 등급도 서로 별갭니다.

즉, ‘청소년관람불가’등급의 영화라도 예고편은 ‘전체관람가’등급을 받아 어린이 영화 관객들에게 보여질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며칠 전 한 복합상영관에서 상영된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영화입니다.

<녹취> "끝까지 한번 가 보자!"

‘본격 액션 느와르’라며 거친 뒷골목 세계를 그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이 영화의 예고편이 1분 가까이 상영됐습니다.

전체 관람가 등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송낙원(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건국대학교 영화전공 교수) : “청불 영화를 전체 관람가로 예고편을 만들기는 쉽지 않죠. 굉장히 상징적인 성적 묘사여도 그 성적인 묘사를 다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사실 예고편이 더 세분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영화 등급 그 네 가지 분류를 다 만들어야 되는 거죠.”

제작사조차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예상한다는 이 영화는, 후에 개봉한다 해도 지금 이 어린이-청소년 관객들은 표를 사서 볼 수도 없습니다.

<인터뷰> 송낙원(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다음 우리 극장에서 할 영화들을 소개하는 건데, 극장으로서는 일종의 영업행위이죠. 사실 입장료란 것 자체가 극장 콘텐츠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한 돈을 충분히 지불한 것이기 때문에, 원래는 광고가 없어야 되는 거죠. 광고를 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는 거고. 관객들이 그 정도를 참아준 거죠.“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지난 2009년 이후 거의 매년 관련법 개정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늘 용두사미로 끝났는데, 개정안 발의를 주도했던 한 국회의원실의 보좌관이 취재진에게 털어놓은 얘기입니다.

<녹취> 개정안 발의 국회의원 보좌관 : “저항이 엄청납니다. 로비도 적당 선에서 해야지...저도 보좌관 생활 10년 넘게 했는데, 법안 발의 자체를 못 하게 하는 건 처음 봤으니까요. 어떻게 알았는지 대표랑 지도부가 우르르 몰려와서...정말 황당하더라고요. '와, 영화 쪽 로비가 진짜 장난이 아니구나' 그 때 느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극장의 90%을 점유하고 있는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개 업체는, 영화 상영 전의 광고 시간은 고객들을 위한 배려라고 설명합니다.

<인터뷰> 조성진(CGV 홍보팀 팀장) : “보통 상영 시각이 돼도 제대로 착석하시는 비율이 굉장히 낮은 편입니다. 늦게 오는 관객들이 계시면 먼저 자리에 앉으신 분들이 상당히 불편을 겪으시거든요. 이런 부분을 조금 완화하기 위해 저희가 '에티켓 타임' 형태로 10분 정도 두고 있고요. 광고뿐만 아니라 대피로라든지 영화예고라든지 이런 걸 활용해서 오히려 관객들이 이 부분을 즐기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8천 원에서 만 원인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 판매수익으로는, 현재 수준의 영화관 운영이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광고를 줄이려면 티켓 값이 훨씬 비싸져야 한다는 맥락인데, 학계에선 지나치게 비대한 복합상영관의 경영 정상화가 우선이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인터뷰> 문철수(한신대 미디어광고영상학부 교수) : “메이저 3사의 극장 점유율이 90%가 넘는다고 돼있으니까 굉장히 포화상태죠. 객석점유율이 높아지기가 어렵죠, 현실적으로. 그런 상황에서는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구조조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취재가 마무리될 무렵 롯데시네마 측이 앞으로 성형외과와 대부업 광고는 추가로 계약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혀왔습니다.

두 업종의 광고를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제한해 온 CGV에 이은 이런 긍정적인 움직임이, 반짝 효과에 그치지 않길 기대합니다.